강동걷기, Gangdong Walks
글.김재민이, text by Gemini Kim
기원전 5000년 경, 한강 줄기를 따라 서울의 동쪽 끝에 자리한 땅에 사람들이 터를 잡았다: 강동구 암사동. 어쩌면 한반도에서 가장 오랫동안 사람이 살던 땅. 이곳에 지금은 하늘 높이 솟은 아파트들이 들어섰다. 한달 동안 강동구 일대를 걸은 작가 김재민이, 그가 가장 오래된 땅 위에 만들어진 도시 내면을 이야기한다.
Gangdong Walks text by Gemini Kim
It was about 5,000 B.C. People settled around the end of Han River, at the east end of Seoul. Amsadong, Gangdong District, is probably the oldest land in which the civilization was created. High-rise condos are now occupying the domain. Artist Gemini Kim has walked around the area for a month to talk about internal stories of the city built on the historic terra firma.
쑥스러워서 무례했다
계산대 앞에만 서면 무언가에 토라진 애 마냥 불편하다. 사람 얼굴을 제대로 쳐다볼 수 없다. 신용 카드를 한 손으로 미리 내밀고 서있다. 어서 이 시간이 끝나기만 기다린다. 내 뒤에서 누군가 지켜보는 듯 하다. 이 초조함은 사람이 있건 없건 매한가지다. 가슴이 옥죄어온다.
‘카드 빼시면 돼요. 영수증 드릴까요?’
이런 모욕적인 말은 생전 처음이라는 듯 고개는 아까부터 외로 꼬고 출구쪽을 본다. 마음이 갑갑하다. 낚아채듯 카드를 회수하며 얼버무린다. ‘버려주세..’
어디서부터 잘못된거지? 계산대에서 친근하고 우아하게 돈 내는 법이라도 어디가서 배워야 할까. 중얼거림을 멈추고 힐끗 뒤를 보니 나처럼 신용 카드를 표창처럼 움켜쥐고 기다는 뒷 사람이 있다.
엣헴! 저로 말씀드릴 것 같으면 버스 정류장도 변변히 없던 그런 변두리 출신이외다. 지천명을 앞두고 있어요. 헌데도 앞가림을 제로 못하고 근근히 살아가는 형편이라 관에서 간혹 이렇게 일을 맡겨주시면 떠돌이답게 이것 저것 주워다 드리곤 하며 입에 풀칠이나 하고 있는 형편이지요. 이번에는 서울 동쪽 강동구에서 일을 주셔서 이렇게 여러분과 만나게 되었으니 이것도 참 묘한 인연 아닐까요. 모쪼록 잘 부탁드립니다.
부천 초입에 80년도부터 살고 있습니다. 그 때도 외가 친척 몇 분은 둔촌동에 계셨죠. 이모 한 분하고 외삼촌 한 분이요. 각별했던 그 분들을 찾아 뵈려고 시외버스를 타고 노량진까지 가서, 거기서부는 노랑과 풀색이 섞인 색 버스를 갈아타고 둔촌동까지 가요. 그 생각을 하니 꽤 오래 전이네요. 올림픽 한참 전인데 둔촌동 주공아파트 단지는 눈이 휘둥그레질 만큼 부러울 만한 광경이 한가득이었지요. 화장실에서는 틀기만 하면 온수가 나오는데다 외기도 없이 따뜻했어요. 그것부터 먼저 생각나네요. 엘리베이터는 또 어떻구요. 그 정숙함은, 뭐랄까, 성전으로 들어가기 전 조용하고 엄숙한 그런 공기와 비슷했어요. 세상에, 단지가 얼마나 크던지, 어렸던 그 때 처음 가본 강동은 그야말로 문화 충격의 연속이었답니다. 오죽하면 집에 돌아가서 꿈을 다 꾸었지 않았겠어요. 거대하고,딱딱하고 높고, 그래서 더 무서워 보였던 기린 미끄럼틀 꿈이에요. 허허벌판 나 살던 동네가 죄다 아파트 단지로 변해있었구요. 그 때도 강동구라는 이름을 달고 있었나 모르겠네요, 잠깐만요, 기록을 찾아보니 송파구가 갈라져 나오기 전이었군요.
몇 년 지나, 그나마 가까운 개봉동 살던 외삼촌마저 외할머니를 모시고 명일동 시영으로 이사를 가시더군요. 명일동. 영화 ‘트루먼쇼’ 라고 아시죠? 여러분이 믿으실지 모르겠지만 아주 오래전부터 그런 내용의 꿈을 꾸었어요. 또 꿈 이야기를 하게 되네요. 아니 잠깐, 이 꿈은 좀 달라요. 저만 그런 환상을 가진 건 아닐지도 몰라서 드리는 얘기죠. 한번 들어보세요. 요즘 유행하는 평평한 지구 이야기 마냥, 이 꿈 속의 세상은 어딘가에 다다르면 꼭 막혀 있는 무대와 같아요. 끝 없는 바다인 줄 알았는데 벽이 나오는 수영장 이었다던지 그런 내용의 꿈이에요. 수영을 해고, 발 끝을 바닥에 대고 살살 걷고, 하늘도 물도 흰 빛이 섞인 연한 파란색, 지금 그 색깔 생각하시나요? 그러다 그 색깔 벽에 다다르게 되는거에요. 어리둥절해요, 꿈은 늘 그런 식이었어요. 명일동 이야기를 하고싶어 꿈 얘기를 길게 했네요. 명일동은 아름다운 꿈의 경계 같은 곳이었어요. 여기까지가 꿈, 여기까지가 서울.
두려움은 눈과 휴대폰을 한 선으로 이어 놓았다
계산대에선 어쩔 수 없이 사람을 마주해야 하지만 길거리, 버스, 지하철같은 곳에서 만큼은 전화기 화면을 보면 된다. 눈과 휴대폰 거리는 40여 센티미터이고 이 사이 공간은 누가 침범 못하는 온전한 내 것이다. 낯선 사람의 눈은 꽤 무섭다. 게다가 홀로 있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한톨 친절한 눈길을 찾을 수 없다. 공격적이고 사나운 시선을 피하려면 아무래도 이 방법 뿐이다. 집 밖에 나와 돌아다니는 시간은 하루 한시간 반, 앞으로 사십 여년 이렇게 살면 이만 시간이 좀 넘어간다. 이만 시간의 안전, 이만 시간의 평화, 이만 시간의 거북 목. 이만 시간의 생을 이렇게 확보했다. 여기서 부터가 확실히 내 자유다. 개성 넘치는 소비자, 훌륭한 의견을 가진 시민으로 거듭나는 이 시간과 공간을 스스로 다독이며 응원한다.
부러운 서울, 강동의 이야기를 조금 드렸으니 이젠 제가 그 무대 뒤를 확인하고 싶었던 마음을 이해해 주시겠죠. 확인하고 싶었답니다. 삼십 년도 더 지난 그때 동경의 실체, 그리고 꿈의 경계를 성인이 되어 발로 밟아보았습니다. 시작은 고덕천입니다.
상일초등학교에서 큰 길을 건너 하남 쪽으로 조금 걸어가면 있는 대사골천과 초이천, 둘이 만나는 거기부터를 고덕천이라 이름부르더군요. 저 변두리 출신이라 말씀 드렸죠? 경계선에 서면 친숙한 생각이 들어요. 고덕천이 시작하는 거기도 그래요. 냄새죠. 행정구역이 갈라지는 동네는 책임 소재가 불분명한 탓인가 그 특유의 냄새가 있어요. 아마 포장 안 된 도로에서 나는 흙 먼지 냄새일 수도 있고, 어디선가 생활 하수가 존재감 있게 비집고 나오는 탓 일수도 있고, 여하튼 저는 그 강한 개성이 좋습니다. 여기서부터 걸어볼까요. 우윳빛 생활 하수가 섞이는 대사골천은 천을 따라 걷다보면 어느새 수량이 많아지고 다시 맑아집니다. 그러면서 고덕천으로 이름이 바뀝니다. 포크레인이 천변 흙을 야무지게 다지는 모습을 보고 걷다가 벤치에 주저앉아서 찬란하게 펼쳐진 새 아파트의 위용을 감상했습니다.
‘여기야. 내가 살고 싶은 그 곳이구나!’ 느긋하게 반시간 즈음 더 걸으면 고덕 상업 업무 복합 단지의 울타리를 만나게 됩니다. 천호동에서 보았던, 둔촌 주공 재개발 길이나 천호역 인근에서 보았던 것과 비슷한 바로 그 거대한 흰 스크린입니다. 안에 어떤 건물들이 들어서는가 살펴도 보고 점점 퍼져나가는 서울을 몸으로도 체감해봅니다. 도시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는 공학자들이나 건물을 짓는 노무자분들을 생각하고, 물이 많은 이 땅에도 쑥쑥 올라가는 구조물도 신기하게 지켜보았습니다.
이렇게 걸으니 또 한번 끝에 다다랐습니다. 복합단지 예정지 끝은 수변 생태공원과 닿아 있습니다. 언저리는 강이지만 마치 바다처럼 조용히 파도가 칩니다. 강 건너로 구리시가 보이네요. 수변 생태공원은 새들이 보금자리를 가질 수 있는 아늑한 곳인데, 이런, 공사 소리가 시끄러워도 새들이 당분간 좀 참아줘야 하겠네요. 한강변에 새로운 다리가 이어지고 있어요. 아마 지하철이 연장되는 모양이에요. 강변 우거진 수풀 옆은 차가 씽씽 달리는 올림픽 대로 입니다. 따라 걷다 보니 드디어 저의 첫번째 목적지인 고덕산에 도착합니다.
강동의 꿈 경계 삼경(三景), 혹은 푼크툼
롤랑 바르트 라는 프랑스 출신 저술가가요, ‘카메라 루시다’ 라는 책 에서 사용했던 푼크툼(Punctum)이란 말, 혹시 들어보셨나요? 갑자기 외국 사람을 언급드려서 죄송합니다. 이 푼크툼 이란 말이 저에겐 꽤 신묘해서 이번에 써먹어보고 싶었습니다. 한번 들어주세요. 그 책에서는 예시를 사진으로 들던데 말이죠.사진을 바라볼 때, 사람들은 보통 갖고있는 지식하고 문화 배경을 바탕으로 사진의 의미를 받아들인다죠. 이건 풍경 사진이다, 저건 세시 풍속을 보여주는 사진이다 등등 그런거요. 그런데 사람마다 다 같을 수는 없으니, 어떤 이는 또 자기 상황이나 개인 경험을 통해 사진의 어떤 부분을 특별하게 받아들인대요. 그리고는 뭔가 다른 걸 연상하고 결국 독특한 느낌을 마음에 담는다는 거에요. 그렇게 특별하게 받아들인 사진의 한 부분이 사진 이미지에 대한 감상 전체를 궤뚫어버린다, 그리고 그런 요소를 푼크툼이라고 한다.. 간단히 말하면 같은 사진을 보고 사진가의 의도와 상관없이 딴 생각에 빠져버리게 되는 그런 경우인가봐요. 그래서 푼크툼이란건 보이는걸 전형적으로 해석하고 이해하는걸 훼방놓거나 빵꾸를 내버리는 작고 뾰족한 돌조각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한 때 사진을 공부 했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사진은 못 찍고 이렇게 저렇게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을 사진 찍듯이 수집하고 있는데요, 주워담은 조각을 잇고, 모으고, 분류해서 저 나름 의미를 만들어갑니다. 그러면서 다른 분들에게 이런 생각을 털어놓으면서 예술적이지 않냐고 강변하기도 합니다. 그리고는 우리 삶 속에도 오묘한 예술이 있을까 싶어 이렇게 보고서를 쓰기도 하구요. 다시 푼크툼으로 돌아와서, 이 말을 제 식대로 나아가 생각을 뻗쳐보겠습니다. 매일 보는 일상 풍경이 한 장, 한 장 사진 이라면 어떨까요? 익숙한 풍경, 있어야 할 곳에 있을 것이 다 있는 자연스럽고 당연한 풍경 말이죠. 도로가 있고, 아파트가 있고, 학교가 있고. 그런데 가끔 그런 풍경속에 방금 말씀드린 푼크툼이 있습니다. 두툼한 현실을 비집고 나와 묘한 긴장감을 주는 그 작은 돌조각에 대해 말씀드리려 합니다. 그렇습니다. 저의 꿈을 구멍내고, 꿈에서 현실로 바람이 빠져나가게 하는 그 돌조각, 강동의 뾰족한 ‘푼크툼’ 셋을 얘기해보려 합니다.
광릉 약수
고덕산 까지 갔으니 이제 약수를 찾아나서겠습니다. 약수는 말 그대로 약이 되는 물인데 말이죠. 진짜 약이 되면 좋겠네요. 말이 나온김에, 전국 약수터를 다 합쳐본다면 모르긴 몰라도 수천 개는 족히 될 거란 말이에요. 샘물이라면 대부분 약수터란 이름을 달고 있으니 말이에요. 그 중에서도 물 맛이 특히 좋다던가, 경험적으로 병이 나았다던가, 아니면 돌아가신 조상님 혹은 한을 품은 누군가의 죽음이 연관되어 있다면 더 점수를 주기도 하죠. 물론 지금은 음용불가가 된 샘물이 대부분인데 참 아쉬운 일이에요. 일자산 곳곳에 있는 많은 약수터들이 음용 불가 팻말을 걸고 있고, 그 유명했다던 둔촌 약수는 위치도 찾을 길 없이 되어버렸네요. 한강물이 휘돌고 있는 고덕산 기슭이라면 당연히 약수가 있겠지요. 약수가 먼저인지 광릉부원군파 묘역이 먼저인지는 알 수 없지만 옷깃을 여미게 되는 훌륭한 묘들 아래 묘역의 이름을 딴 광릉 약수 입니다. 그런데 광릉부원군은 어떤 분이셨을까요?
…벼슬에 나오셔서 더욱 단정하시고 조정에서 정색을 하시고 고요하며 흩트러지지 않으시고 부 또한 축적치 않고 넓게 베푸시니 깊고 넓게 공을 이루셨습니다. 대천의 커다란 산이셨고 한나라의 표준이시며 만조백관의 스승이셨습니다. 술로 병을 얻으셨으나 거북이 점을 친 것과 같이 장수하시니 천수는 억지로 되는 것 아니나 나이 깊어 궤장을 받으셨습니다. 집에 있으며 채식을 하고 소리와 노래를 멀리 하고 두 눈에 눈물 어리니 모든 사람이 슬피웁니다. 속세에 있는 우리는 어려운 일을 누구에게 물으며 누구와 한 배를 타고 건넙니까? …*
- 광릉이씨대종회 홈페이지에 수록된 허백정(虛白亭) 홍유달(洪遺達)의 문집(文集), 卷三 중 발췌라 합니다. http://www.gwanglee.or.kr/sect_info04?nm=0104
묘역 바로 아래께 약수라니, 그 존재만으로 보잘것 없는 제 세계관이 쩍 하고 금이 가고 말았습니다. 서대문 영천 약수 역시 거기서 돌아가신 분들의 한을 받아 영험해졌다는데 광릉약수도 이런 위치 때문에 더더욱 그 신묘함을 믿게 됩니다. 음용불가 팻말을 발견하기도 전에 감동스럽게 한 컵 받아 음용했습니다. 족히 이십리는 걸은 날이라 어찌나 시원하던지요. 시원한 약수의 맛과 기분은 현실, 그리고 앞으로도 샘솟을 이 물줄기는 미래입니다. 그런데 아니, 무덤가에 위치한 약수터가 현실, 음용불가한 물을 탐닉하고는 이제 배탈을 걱정해야 하는게 더 가까운 미래일까요? 약수물을 먹고 자랐는데 이렇게 약수의 시대가 지나고 있나봅니다.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지 혼란스러운건 아마 이런 탓인가요. 바로 앞 거대한 정수장에 계신 분들은 약수물을 마신 저를 한심하게 생각할까요. 저는 과학 문명을 누리면서도 동묘에 가서는 만병통치약 선전을 보다 지갑을 열고 약을 구입합니다. 약수를 대처할 삶 속 명약을 고대하며 길을 계속 걸어갑니다.
강동 보훈 회관
최근 새 단장해서 아직 페인트 냄새가 맴도는 강동 보훈 회관은 이제 개발이 한창인 예전 둔촌 주공단지와 중앙 보훈 병원 중간께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서울은 기본적으로 군사도시’ 라고 도시 역사에 밝은 한 선배가 알려준 적이 있습니다. 서울 시내 주요 시설물의 위치, 건물 옥상 방공포, 아파트에 숨겨진 요새 등등등.. 헤아리면 수도 없는 소소한 이야기들이 흥미진진합니다. 그렇다고 하면 참전 용사들이 특히 많이 계시는 강동은 이 ‘군사도시’ 내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 동네인가 생각하게 되네요. 외국 영화에 노상 나오고 젊은이들이 요즘 많이 쓰는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말인데요, 월남 다녀오신 제 아버지를 비롯한 그 세대 분들이 어떻게 대처했는지 마음이 쓰입니다. 저는 꼴랑 이년 반 군 복무 경험을 아직도 털어내지 못하고 전전긍긍할 때가 많은데 엄청난 일을 겪으신 분들의 심리는 헤아릴 길이 없네요. 집안 내력인지 강한 애국심의 갑옷을 갖추지 못한 제 아버지는 술에 기대시는 듯 하다 이제는 농사일로 ‘힐링’ 중이십니다. 파월 다녀오신 60년대 당시를 여쭤도 도통 이야기가 없으십니다. 아버지 사시는 곳 주변에 이렇게 보훈 회관이 있었다면 좋았을텐데 생각이 들었습니다. 판데믹이 한창인 때라 아직 정식 오픈을 하지 못했지만 보훈회관에 계시던 어르신께서 친절히 내부를 보여주셨습니다. 십자성마을을 막 지나온 터라 빨려들어가듯 보훈 회관 로비에 전시된 사진들을 살펴봅니다. 그냥 사진으로만 박제될 수 없는 현대사 질곡들을 시원한 에어콘 바람을 맞으며 잠깐 ‘감상’하는 기분이 죄스럽습니다. 흠결 없이 보이는 강동 곳곳의 풍경, 개발에도 가까스로 살아남은 한 덩이 일자산, 도시 중산층의 더 큰 꿈을 앞두고 새로 일어나는 주공단지, 그 중간 보훈 회관이 있어 다행이라 생각했습니다. 여기도 여지없이 시공의 틈입니다. 과거로 이렇게 안전하게 들어가 볼 수 있는데 어서 판데믹이 끝나고 여기 계신 분들에게 좀 더 이야기를 더 들을 수 있는 날을 기대해 봅니다.
올림픽대로변 빈집과 토끼굴 너머
동쪽에서 서쪽으로, 만일 차로 올림픽대로를 지나면 확실히 서울에 들어온 기분이 들테죠. 거기서부터 바로 서울 강동구잖아요. 이제 암사동을 지나면서 올림픽 대로가 왼쪽으로 확 꺾이는데 조금 더 가면 대로변에 딱 붙어선 집이 있어요. 혹시 보신 적 있나요? 아마 이 집의 목적은 곧 밝혀질 것입니다. 자세히 보니 집 뒤에 체력 단련을 하던 샌드백이 아직도 놓여있네요. 오늘은 뚜벅이답게 올림픽 대로 쪽 아니고 아파트 단지 방향 선사로에서 그 집으로 접근해봅니다. 아파트단지와 격을 두기 위한 공원 부지에 어정쩡하게 서있는 바람에 정돈된 주변 풍경에 모종의 균열을 주네요. 여깁니다.
‘저, 선생님, 저기 뭐하는데에요? ’ ‘저기 비어있는지 꽤 됐어요, 그냥 빈 집이에요’
가정집은 아닌 듯 한데 동네 주민께서 그렇게 이야기하니 빈 집이라 부르는게 좋겠네요. 물탱크 등을 보면 여기서 자급하며 무슨 공사같은걸 이끌던 구심점이 되었을 장소인 듯 합니다. 올림픽 대로를 차로 많이 다니신 분은 아시겠지만, 대로변 펜스 바로 뒤로 붙어있는 가옥은 제가 알기로는 없습니다. 하다못해 아파트 사이 소음방지 스크린이라도 세워져 있죠. 전무하다시피 한 이런 집 한채가 스크린도 없이 이렇게 아직 버티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희소성이 있지 않을까요? 어긋난 듯한 풍경에 자꾸 눈길이 갑니다. 녹지에 자리한 이 2층 건물은 아마 한동안 거기 그렇게 서 있으리라 예상합니다. 참, 저도 차가 있던 때가 있었습니다. 밤에 올림픽대로를 달리면 한강도 보이고, 강남도 지나고, 좌우지간 서울 풍경을 지긋이 바라보며 도시인의 멜랑콜리랄까 그런 멋에 취해도 봤던 기억이 있어요. 그런데 이 산통깨는 빈 집이 어딘가 거슬리면서 묘하네요. 제가 가졌던 도시적 환상에 방해가 되어 그럴까요. 저만의 보물을 발견한 듯 열에 들떠서 거기서 또 의기양양양하게 북동쪽 방향으로 걸어 올라가 봅니다. 여긴 또 어딘가. 토끼굴 교차로를 지나 대로변으로 계속 걷습니다. 올림픽 대로변으로 아직 틈새 공간이 좀 있네요. 이 길 끝이 암사동 유적지로 막혀있는지 알고 있었어요. 그래도 트루먼쇼의 끝을 보고싶습니다. ( 여기는 혹시 가실 분들의 체험을 위해 빈칸으로 남겨놓으렵니다. 올림픽 대로와 붙어있는 농원, 빈 땅 등등 아주 매력적인 곳이거든요)
임사체험을 한 사람들은 긴 일생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휙 하고 스쳐 지나간다고 하죠. 혹시요, 머릿속에서 일어난 일이 커다란 종이같은 한 면에 인쇄된 듯한 여러 이미지의 집합체였다면 믿으시겠어요? 마치 거대한 포스터 같다는 가정이죠. 번쩍 하는 순간 머릿속에 비춰진 이 거대한 이미지를 우리 뇌가 기억하고, 이걸 납득할 수 있게 시간 순서대로 배열해서 풀어내다보니 일초만에 본 이미지도 장편영화마냥 긴 시간을 경험했다고 회상하는 원리라는데요. 정말 그렇다면, 경험해 보셨겠지만 살짝 졸면서 꾼 꿈도 꽤 긴 이야기를 추출해 낼 수도 있는거죠.
제가 동네를 걸어다니며 본 한 장면 한 장면을 커다란 종이에 다 우겨넣는 상상을 합니다. 시간도 장소도 다 뒤죽박죽이지만 이 커다란 종이를 반으로, 또 반으로 접습니다. 그리고 송곳으로 구멍을 낸 다음 다시 종이를 펴봅니다. 풍경 어디에 구멍이 나 있을지, 그 구멍을 통해 다른 풍경으로 넘어갈 수 있을지 생각합니다.
붙은 귀
어설프게나마 사람을 바로 볼 수 있는 방법을 드디어 찾은 듯 하다. 완전히 방음이 되는 헤드폰을 육개월 할부로 사서 머리에 쓰고 다니면서부터 였다. 역설적이긴 한데, 세상과 가능한 한 나를 분리하면서부터 오히려 다시 세상을 마주할 용기를 갖게 되었다. 거리에 나와 있을때에도 전화기로터 눈을 떼어 보기도 하고, 계산대에서 일하는 사람의 얼굴을 본 적도 몇 번 있다. 필사적으로 나를 분리시키는 중이다. 애착, 욕구, 불안, 유아기에 충족 되지 못했던 감정을 극복하려면 먼저 ,외부에서 오는 자극을 단순하게 줄여봐야 한다. 오늘 할 일은 이걸로 충분하다.
* 글 속 사진과 이미지는 글쓴이가 준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