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10±200 B.P.
김장언
미술평론가 독립큐레이터
암호와도 같은 ‘4,610±200 B.P.’는 신석기 유적지인 서울 암사동 유적5호 집터와 그곳에서 출토된 유물들의 시간을 수치화한 것이다.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법으로 기록된 이 시간은 건조하고 낯설지만, 가늠하기 어려운 시원적 시간을 사유하게 한다. B.P는 Before Present 혹은 Before Physics의 약어로, 유기물의 방사성 탄소의 농도를 통해서 그 생명이 사멸한 연대를 측정하는 기준점이다. B.P에서 ‘현재’는 1950년이 기준이 되며, ‘물리학’은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법이 물리화학의 한 분야로서 1949년 12월 공식적으로 사이언스 지에 발표되었고, 한편, 대규모 핵무기 실험이 1950년 이후 급격하게 증가함으로써 자연 환경에서 방사성 탄소의 비율이 크게 변화되었기 때문에 사용되었다.
B.P.가 흥미로운 것은 그 배경이 생명과 죽음 그리고 문명을 상징적으로 암시하기 때문이다. 생명체의 유기적 작용은 죽음 이후에도 남겨진 물질 속에 자신의 시간을 담고 있으며, 과학 기술은 그 응축된 시간을 수치화한다. 생명과 죽음의 흔적은 지구라는 생태계 속에서 방사성 탄소의 양으로 순환된다. B.P.는 그 순환의 시간을 알려준다. 그러나 그 기준점은 문명이 생태계의 순환을 인위적으로 조작한 시점으로 하고 있다. 방사성 탄소가 인위적으로 조작되어 과학적 데이터로서 근거를 갖기 어렵다는 것은 문명에 의한 자연 파괴의 상징적 지표로 이해될 수도 있으며, 이러한 파괴와 더불어 새로운 시간의 분기가 이루어졌다고 말할 수도 있다. 문명이 이루어내는 진화는 분명 인간을 해방시켜 주지만, 한편 파괴하기도 한다. 그 파괴는 인간의 문명에 그치지 않고 우리가 포함된 세계, 지구를 포함한다.
B.P.는 이러한 상황을 압축적으로 드러낸다. 화석원료의 대규모 사용 역시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지만, 1950년대 이후 급증하게 된 핵무기 실험은 자연계의 방사성 탄소량을 인위적으로 교란하기 시작했다. 시간의 분기가 자본주의와 냉전 이데올로기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다. 그리고 그 분기의 지표는 지구 시스템에 대한 직접적인 위해의 결과물이다. 즉, 시간의 새로운 기점이 문명에 의한 자연에 대한 직접적인 개입으로 출현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법에 의한 시간의 표시는 비단 과거의 어떤 유기물의 시간을 수치화하는 것에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문명이 교란한 현재의 시간성과 다른 과거의 시간성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새로운 시간의 분기가 인간에게 비극적일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희망을 줄 것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자연은 회복될 것이다. 물론 그 회복의 방식에서 인간을 고려할 것인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말이다.
작가 정소영은 서울 암사동 유적과 관련된 공공예술 프로젝트, <땅-비>를 기획하고 제안했다. 이 프로젝트는 크게 두 개의 축으로 구성된다. 하나는 동일한 제목의 조각작품, <땅-비>이며, 다른 하나는 온라인 프로젝트인 <www.rising-rain.com>이다. 그는 ‘선사시대의 역사를 해석한다는 것은 … 파편을 근거로 커다란 문명을 상상하는 일(이며) … 고대 유물에 담겨진 흔적은 인간이 동경해온 하늘과 삶을 주는 자연에 대한 선사인들의 은유를 드러낸다’고 말하면서, 빗살무늬토기라는 신석기시대 유물을 매개로 좁게는 암사동이라는 공간, 넓게는 땅과 하늘이라는 환경으로써 공간에 대한 인간의 욕망과 동경을 담아내고자 했다.조각 작품은 이번 프로젝트를 기획한 작가 정소영의 개별 작업이며, 온라인 프로젝트는 이러한 기획 취지에 동감한 동료 작가들의 작업으로 구성되었다.
기획자는 암사동 선사 유적을 대표하는 빗살무늬토기를 기술, 예술, 삶으로 나누어, 유물이 내포하는 시간성과 물질성을 현재화하고자 했던 것 같다. 토기를 굽는 기술이 갖는 선사시대의 의미를 현재의 기술을 통해서 재맥락화하거나, 기술 자체를 전시를 담아내는 도구로서 활용하기도 한다. 한편, 토기에 남겨진 문양들을 신석기시대인의 감각과 표현으로 상정하고, 그 감각과 표현의 의미를 추상적으로 현재화하거나 암사동이라는 혹은 지구라는 삶의 공간 속에서 다르게 작동시키고 있다. 따라서 제목, ‘땅-비’는 시간을 가로지르는 삶과 생명, 그리고 그 토대에 대한 성찰적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프로젝트에서 흥미로운 점은 추상성과 가상성이다. 정소영의 <땅-비>는 점, 선, 면의 기본 요소가 결합되어 새로운 시간과 공간 그리고 운동을 형성하는 대형 조각이다. 그는 3개의 원통형 도자기 유니트와 5개의 원통형 유니트를 가지고, 단일 선형 구조물 유니트를 다시 만들고, 그 유니티들을 결합하여, 하나의 면을 구성하고, 그 구성된 면에 어떤 리듬과 운동을 부여하여, 새로운 공간을 형성하거나 혹은 비어 있는 공간 자체에 새로운 틈을 삽입한다. 작가는 빗살무늬토기가 갖는 모든 조형적 요소, 형태와 빗살무늬 및 연속적인 점들을 재현하기보다 추상화하여 그 유물이 갖는 시간성을 가로지르고자 한다. 따라서 이 작업은, 출발은 신석기 시대의 유물에서 시작되었을지라도, 그 시간에 머물지 않고 독립적인 시간성을 갖게 된다.
<땅-비>에서 나타나는 추상성은 단지 조형적인 부분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기술에 대한 태도에 대해서도 나타난다. 신석기 시대 토기제작은 시대적 혁신으로써 삶의 조건을 근본적으로 변형시켰다. 그 고대의 기술을 단지 조형적인 것으로 이해하기보다, 기술이 갖는 의미를 추출하여, 자신의 작업에 재활용한다. 산업용으로 활용되는 자기, 즉 산업용 소재로서 세라믹의 가능성을 가시화한다. 따라서 이것은 전통적인 토기의 재현이나 부활이 아니라, 고대 기술에서 추출된 원리들을 증폭시켜 지금의 시간 속에 압축적으로 가시화하는 노력으로 생각될 수도 있다.
추상성은 이 프로젝트에서 역사 이전의 시간과 공간을 가로지르는 중요한 도구로서 작동되었다. 이것은 비단, 작가의 <땅-비>에만 머물지 않고, 온라인 프로젝트에 참여한 동료 작가들의 프로젝트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홍초선의 <굳어지다>는 토기가 흙에서 굳어져 가고 조형화되는 과정의 내부 소리를 하이드로폰으로 사용하고 기록했다. 우리가 들을 수 있는 것은 어떤 입자들의 움직임 소리들인데, 그것은 증강 현실을 통해서 카메라에 의해서 포착되는 사물들과의 반응 속에서 증폭되기도 하고 소멸되기도 한다. 또한 박형근의 <코스모스>는 작가가 제주도의 원시림에서 촬영한 밤하늘의 별자리를 다시 현재의 시공간으로 불러들인다. 암사동의 시공간은 작가에 의해서 기록된 원시림의 시공간과 중첩되어 새로운 시공간을 출현시킨다. 서사적 이야기를 드러내는 작업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프로젝트에서 추상상은 그 대상과 공간이 갖는 시간성을 결코 다시 시각적으로 환원시키지 않는다는 점에서 우리에게 새로운 시간의 문을 여는 열쇠로 작동한다.
기술의 문제는 추상성 보다 오히려 가상성에 의해서 보다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이 프로젝트는 물리적으로 작가의 조각 작품 <땅-비>를 제외하면 모두 온라인 상에서 이루어진다. 온라인에 참여한 모든 작업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증강현실 기술을 활용하여, 역사 이전의 시간과 그 시간이 잔존하는 암사동이라는 공간을 가상적으로 가로지른다. 물론, 조영주와 김재민이의 작업은 구체적으로 암사동이라는 공간을 체험하고 경험하며 관계 맺는 작업이다. 물리적으로 가시화된 하나의 대형 조각 작품과 온라인을 통해서 그 공간에서 다시 출현하는 혹은 출현될 순간을 잠재적으로 기다리는 작업들 모두는 가상적으로 시간과 공간을 변증법적으로 매개한다. 그것을 지탱시켜주는 것이 이번 프로젝트에서 기술의 문제이다.
기술은 단순히 증강현실 기술을 이번 프로젝트에서 활용했다는 것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시간을 감추고 드러내며, 의미를 출현시키고 지우며, 물질적인 것과 비물질적인 것의 경계를 가로지르는 중요한 도구로서 기능한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그것은 과거의 시간과 현재의 시간을 다시 인식하게 하고 또한 그것을 인식하지 못하게 하는 어떤 순간을 출현시킨다. 그러나 우리는 어떤 새로운 시간의 종합을 감각적으로 전체 프로젝트 <땅-비>가 서 있는 장소에서 다시 경험할 수 있다. 이것은 미학적 대상으로 환원되지 않고 감각적인 대상 그 자체로 남겨지는 이미지의 가상성 그 자체이다. 앞서 언급한 추상적인 시간, 4,610±200 B.P.을 접촉하고 전유하며 새로운 시간으로 탈출할 수 있는 어떤 순간을 만들어내는 가상성으로의 입구를 형성하는 것이다. 즉 이 프로젝트는 아이러니하게도 시간의 정치상태, 이미지의 가상성으로 들어갈 수 있는 순간을 만들어낸다. 여기에서 기술은 매우 중요한 도구가 되는 것이다. 물론, 이 프로젝트가 그것을 완벽히 성취했다고 자신있게 말하는 것을 주저할 수는 있지만, 과거와 현재라는 시간을 가로지르는 이미지의 가상성에 다가가려는 시도를 공공미술을 통해서 추구하고자 했다는 점에서는 기획자와 작가들의 노력과 성취는 의미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암사동 유적지를 상징화하여 지역 브랜드를 일신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작가의 몫이라기보다는 오히려 행정가와 사업가의 몫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남겨진 시간의 흔적을 사유하고 성찰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행위이다. 그렇다면, 암사동 유적지를 지우고, 빗살무늬토기를 지우면 무엇이 남을까? 그것은 지표화된 숫자와 부호의 조합인, 4,610±200 B.P. 뿐이다. 현재와 다른 시간의 축, 2백년의 오차범위에서 4천6백1십년이라는 정확하지 않지만 정확하게 가시화된 시간의 양은 그곳에서 발견된 어떤 유기물에 잔존한 방사성 탄소의 소멸된 양이 환산된 수치이다. 이것이 역사와 문명을 가로질러 우리가 다가갈 수 있는 시간성의 흔적들과 그리고 지금이라는 순간에 우리가 경험하고 만들어 가야 할 새로운 시간성의 근거가 될지도 모른다.